[도서리뷰:한국사] 역사를 질문하는 역사1_전근대한국사(김선진)
[도서리뷰:한국사] 역사를 질문하는 역사1_전근대한국사 (김선진)
안녕하세요:)
역사 블로그 '토요히스토리' 입니다.
12번째로 인사드리는 역사 도서 리뷰입니다.
작년, 재작년에
토론 수업을 진행하면서
유용했던 책인데요!
바로 김선진 선생님께서 쓰신
《역사를 질문하는 역사1》 입니다.
실제 아이들과 진행했던
역사 토론 수업을 바탕을 소개한 책입니다.
중학생들과 함께 진행했던 활동이기에
저는 고등학교 수준으로 조정해서 활용했습니다^^
학생들은 역사 교과서를 '진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학생뿐만 아니라 비전공자들에게도 그렇지 않을까요?
하지만 역사는 사실과 해석의 학문으로,
교과서도 하나의 해석일 뿐입니다.
교과서는
최근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 못할수도 있으며,
다양한 역사적 해석을 품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을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근대 한국사를 색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14개의 주제를 통해 함께 고민해 보면 좋을것 같습니다.
《역사를 질문하는 역사1》
바로 리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서평
일반적인 강의식 수업에서 '질문'은 그 중요성을 알면서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작년에 한 차시마다 한 개의 발문을 꼭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에 쫓겨 학생들의 대답을 차분히 기다리지 못한 나의 미숙함도 있었지만, 대체로 '질문'이 있는 역사 수업이 아직 나에게는 많이 어렵다. 이 책은 총 14가지의 주제를 통해 기존 교과서의 서술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다소 아쉬운 주제도 있었지만, 중학교 학생들과 역사 수업에서 나눈 저자의 경험담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장. 농경과 목축으로 인간의 삶이 나아졌을까요?
2장. 고조선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기원을 보여줄까요?
3장. 근초고왕·광개토왕·진흥왕, 꼭 기억해야 할까요?
4장. 불교는 지배의 도구였을가요, 평민들의 위안이었을까요?
5장. 신라는 정말로 삼국을 통일했나요?
6장. 중앙과 지방이 균형 있게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7장. 과거제도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었나요?
8장. 진정한 권력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9장. 원 간섭기는 굴욕의 시기이기만 했을까요?
10장. 정몽주는 충신, 정도전은 혁명가, 이방원은 명군일까요?
11장. 세종은 훌륭한 최고지도자였을까요?
12장. 임진왜란을 임진왜란으로 불러야 할까요?
13장. 좋은 법과 제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14장. 조선은 성리학 때문에 망했을까요?
역사 이야기
1장. 농경과 목축으로 인간의 삶이 나아졌을까요?
- 흔히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인간의 삶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농경과 목축의 시작은 인류의 의식주를 근본적으로 바꾸었으며, 역사가들은 농경과 목축으로 인한 이 같은 변화를 통틀어 '신석기 혁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농경과 목축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만 만들었을까?
-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신석기 혁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책에서도 영양 상태, 가뭄이나 병충해, 질병 등 농경과 목축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만 만들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 또한, '신석기 혁명'으로 농경과 목축을 통한 식량 생산이 가능해졌지만, 모든 인류가 생활 방식을 바꾼 것은 아니었다. 유목민뿐만 아니라 농경을 하지 않고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했다. '신석기 혁명'으로 모든 인류가 농경과 목축을 채택했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주의가 필요하다.
6장. 중앙과 지방이 균형 있게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신라시대의 신분제인 골품제에 따르면 중앙에 사는 사람만 골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방 사람은 아예 골품의 신분 계급에 포함되지도 못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지역 간 균형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라의 지방행정제도인 9주 5소경은 지역의 균형과 통합을 추구한 대표적인 예이다. 고려시대에는 지방 행정구역에 지방 관리를 파견하기 시작하였으며, 3경 제도를 통해 고려의 중심이 수도 개경(개성)에 치우치지 않도록 노력했다.
- 지역 간 불균형이 본격적으로 심화된 것은 조선 후기라고 볼 수 있다. 점차 수도 한양이 다른 도시들에 비해 눈에 띄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교통과 상업의 발달로 한양은 물자가 풍부해지고 인구가 늘어났다. 과거 시험의 합격자 중에서 한양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높아졌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도 이러한 현실을 간파하고, 자식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서울의 문밖에서 몇십 리만 떨어져도... 원시사회가 되어 있으니... 사람이 살 곳은 오직 서울의 십 리 안팎일 뿐이다. 만약 집안의 힘이 쇠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서울 근교에서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으며 삶을 유지하다가 자금이 점점 불어나면 서둘러 도시의 복판으로 들어간다 해도 늦지는 않다... 먼 시골로 이사 가 버린다면 무식하고 천한 백성으로 일생을 끝마치고 말 뿐이다.'
- 중앙과 지방의 균형있는 발전은 현재에도 중요한 문제이다. 역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7장. 과거제도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었나요?
- 우리나라의 과거제도는 고려 광종 때 도입되었다. 과거는 시험을 통해 관리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광종은 과거제도를 통해 호족 세력을 견제하려 했다. 호족의 자손이라도 능력이 없으면 시험에 합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는 호족 세력의 힘을 약화시켰고,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관직에 오를 기회를 제공했다. 과거제도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시행되는데, 주로 한문 능력과 유학 경전 지식을 평가했다.
- 신분제도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할 수는 있지만, 과거제도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거제도의 시행으로 학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나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문벌 귀족의 자제만 국자감에 들어갈 수 있었고, 향교 역시 향리의 자손이 입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 한편 과거제도는 학문의 다양성을 저해하기도 했다. 사서오경과 역사책들은 과거 시험에 출제된 반면, <장자>, <노자>, 불경은 도교, 불교 등의 교리를 담은 책이라 시험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과거제도는 폭넓은 지식과 사상을 갖춘 관리를 선발하기보다는 유학에 치중한 관리 등용 제도였다. 또한 과거 시험은 제한된 시간 안에 같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시험이었기에 '각촉부시'가 등장하기도 한다. 각촉부시란 초에 눈금을 그어 놓고, 눈금이 타기 전까지 시를 짓는 시합이었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 외에도 정책을 판단하는 능력, 도덕성과 청렴함, 협동력과 설득력 등을 두루 갖추어야 하는 관리들에게 과연 '과거'는 적절한 등용 제도였을까? 현대의 각종 국가 시험에도 해당하는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지만, 과거제도를 시행하지 않았다. 일본은 오랫동안 신분이 고정된 사회였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시험 등 수단을 통해 신분 상승에 희망을 품지 않았다. 대신 일본에서는 장인 문화가 발달했다. 신분이 고정된 탓에 가족이 대대로 같은 일을 이어 온 덕분이었다. 국가가 공인한 신분 상승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일본인들은 자기 일에서 높은 경지에 이르는 방식으로 자아를 실현했던 것이다. 몇몇 일본 역사가들은 일본에 과거제도가 없었기에 오히려 다양한 학문이 고루 주목받았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12장. 임진왜란을 임진왜란으로 불러야 할까요?
- 1592년 5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은 일본군은 조선을 침략했다. 일본군은 빠른 속도로 조선의 영토를 점령했고, 조선의 임금은 한양을 떠나 평양으로, 의주로까지 피난했다. 그러나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과 의병들의 활약으로 반전의 분위기를 만들었고, 명의 군대도 조선을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전쟁은 끝이 나지만, 이 전쟁은 조선과 일본, 명과 여진족 등 동아시아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이 전쟁은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임진왜란(한국), 분로쿠 게이초의 역(일본), 항왜원조(중국), Imjin war(임진전쟁), Japnese invasions of Korea(일본의 한국 침략) 등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전쟁이 동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끼친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면서 'The great East Asia War(동아시아 대전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 동아시아 3국은 같은 전쟁을 치렀지만, 전쟁에 대한 입장에 따라 각각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동상이몽'이라는 말처럼,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 용어는 각 나라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며, 그에 따라 어떤 역사적 사실들은 축소·누락되거나 강조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임진전쟁과 관련해서 한중일이 모두 동의할 만한 역사 용어로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이와 비슷한 사례가 또 있을까?
확장하기(feat. 한국사 세특)
1. 1장에서 14장까지의 '토론 주제' 선정하여 토론 진행하기.
- 저는 1장과 7장을 수업 시간에 활용해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다양한 학생들의 의견이 나와서 정말 좋았습니다. 제가 자주 사용하는 토론 모형은 '프로콘(pro-con) 토론 모형'입니다. 찬성과 반대 입장을 고루 생각해 볼 수 있는 이 토론 모형을 통해 역사적 사고를 확장해 보면 어떨까요?^^

*포스팅에 역사적인 오류나 문제가 있을 시 댓글로 알려주세요.
*개인적인 의견이 담겨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