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리뷰:동양사] 제국의 브로커들(우치다 준)
[도서리뷰:동양사] 제국의 브로커들 (우치다 준)
안녕하세요:)
역사 블로그 '토요히스토리' 입니다.
16번째로 인사드리는 역사 도서 리뷰입니다.
오늘 소개할 도서는
우치다 준의《제국의 브로커들》입니다.
이 책은 부제는
'일제강점기의 일본 정착민 식민주의 1876~1945' 인데요!
지금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재조(在朝) 일본인에 대한 역사를
‘정착민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라는 시각을 통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조선총독부의 강압적인 식민 통치와
그에 따라 고통받는 조선 민중이라는
이분법적인 대립 시각을 벗어나,
일제강점기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대학원 수업에서 알게되어 읽어보았는데,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습니다.
정착민 식민주의자들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었던
《제국의 브로커들》
바로 리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서평
우치다 준은《제국의 브로커들》을 통해 지금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재조(在朝) 일본인들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이들을 '정착민 식민주의'(settler colonialism)로 정의하며, 식민 통치의 각 단계별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일제강점기'라는 시기를 공부하다 보면, 조선 총독부와-조선 민중의 이분법적 대립 시각에 갇혀있기 쉽다. 군대와 경찰을 앞세운 일본의 군국주의, 총독부의 침탈사적 관점에서 기술된 서사나 연구물들로 익숙해진 일제강점기를 일본인 정착민들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본 점은 매우 새롭고 인상 깊다. 정규 교과서(고등학교 한국사)에서도 식민 정책과 그에 대한 저항을 공부한다. 물론 그것이 잘못되거나 옳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보다 심도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필요하다.
저자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으로 건너 온 일본인들에 주목하여, 그들이 식민 통치의 각 단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로 고바야시와 같은 이주 정착민들을 '제국의 브로커들'이라고 명명하면서, 이들이 단순히 개인적의 부의 축적뿐만 아니라, 식민권력의 대리인이나 앞잡이 역할을 했던 중재자적 지위에도 주목한다. 즉 이들의 행적을 추적하다 보면 식민권력의 주변인들처럼 보이는 이들이 사실은 제국의 가장 중요한 일부 전환기들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강점기 동안 우리 민족이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렇게 끝나서는 안된다. 다양한 시각과 연구를 통해 보다 더 입체적으로 이 시기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랜만에 읽은 흥미로운 책이었다.
제1부. 출현
1장. 정착민들의 세계
2장. 정착민들과 국가: 불안한 동반자들
제2부. 행동
3장. 화합의 제국건설
4장.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담론
5장. 조선의 산업화
6장. 정치적 목소리를 찾아서
제3부. 국가기관들
7장 만주의 충격효과
8장. 총력전 체제 아래의 국민과 신민
역사 이야기
정착민들의 등장
- 제국의 브로커들은 그 시작이 다양했다. 그들은 자비로 조선에 건너간 일본인 남녀 하층민 집단의 출신들이었다. 식민화의 이런 측면들은 각기 여러 평범한 행위자들(소상인과 무역업자들, 젊은 교육자들과 언론인들 등)을 등장시켰는데, 그들은 그 수와 다양성 측면에서 조선 땅에서 영속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들은 점차 애국적 의무이행으로 이해하게 된 행동들을 통해 제국건설의 자발적인 참여자가 되었다.
- 조선에 간 초기 정착민들은 대부분 메이지 정부가 초래한 근대화 개혁의 파괴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피난처를 찾으려 발버둥치고 있던 민간인들이었다. 하지만 국내의 혁명적 변화에 '떠밀렸든' 아니면 해외에서의 기회가 제공하는 매력에 이끌렸든 간에, 해외 정착민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깃발을 뒤따라가기보다는 앞장서서 이끄는 쪽이었던 그들이 일본의 동아시아 제국의 건설토대를 쌓았다는 점이다.
정착민 식민주의자들의 역사적 3단계
제1부: 19세기 말 수십년 & 1910년대 총독정치 초기 10년간 진행된 일본의 팽창(조선 침략) 형성 시기
- 평범한 일본 정착민들이 어떻게 하위제국주의자(subimperialist)로 변신해 자신들의 이주사(移住史)를 전개해 나갔는지 보여준다. 이들은 1905년 을사늑약 시점에 이르면 물리적으로 조선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제국정치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중앙집권적 통치 질서를 유지하려던 식민당국의 노력과 점차 충돌의 강도를 더해가기까지 했다. 1910년 합병조악 뒤 새로 부임한 데라우치 총독의 집권 아래에서는 모든 조선 거주민들을 단일한 통치체제 아래 두겠다는 방침의 일환으로 일본인 정착민들의 자치를 폐지했을 때, 그 긴장은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다. 이런 갈등 속에서 제국의 브로커들 제1세대가 등장했다.
*국민 자격(citizenship)에서 국적(nationality)을 구분하는 이러한 시스템 아래, 일본인과 조선인들은 결코 법 앞에 평등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본인 정착민들은 자신들 해외 정착민에게만 적용되는 규제들에 여전히 직면해 있었다. 일본에 사는 조선인(또는 타이완인)이 거주와 납세 관련 자격을 갖추기만 하면 투표권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일본의 해외 정착민들은 투표권을 상실했다. 이런 일본의 관행은 아프리카의 유럽 종주국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아프리카의 유럽인들은 어디에서 살든 본국 시민권만 갖고 있으면 그 권리를 모두 행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오직 백인들만이 '어둠의 심연'에서 '문명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 p.181
제2부: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집권 아래 표방한 '문화정치' 10년간의 시기
- 조선인의 독립을 요구하는 3·1 운동(1919)이 발발하자, 식민당국과 일본인 정착민들은 자신들의 팽창 전략을 재정비 할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브로커들은 어떻게 관료와 힘을 합쳐 동요하던 식민지 재건사업에 참여할 것인지 고민하며, 조선 통치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분투한다. 특히 이 시기에 이들 일본인 정착민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총독부의 동맹자이면서 동시에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던 양가적 특성을 분명하게 노출시켰다. 이 시기에 제국의 브로커들은 조선인들과 적으로서 뿐만 아니라 동지로서의 관계를 심화시키기도 했다. 일본인 정착민들은 유력한 조선인들(엘리트 조선인)과의 협력을 통해 자신들의 식민지배와 식민지 정치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는 수단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사이토의 내선융화 요구에 부응한 정착민 지도자들은 제국을 위에서부터, 그리고 아래에서부터 바꾼 중요한 비공식적 영향력을 형성했다. 다양한 개인들로 구성된 각계각층의 조언자들이 식민지 관료체계의 그늘 아래서 자율적으로 또는 반(半)공식적인 자격으로 활동했다. 조선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풀뿌리 차원의 많은 노력들이 이 비공식 영역에서 이뤄졌다. 특히 동민회의 활동은, 실제로 종종 관료들의 업무로 간주됐지만, 정착민 지도자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치전략을 함께 짜는 공저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제국의 브로커들은 동화를 민족화합으로, 그리고 식민지 조선을 다민족국가로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p.262
제3부: 일본의 군사 팽창 정책(1930년대~1945년 말)
-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점령하면서 정착민들과 조선인 엘리트들, 그리고 식민국가 간의 관계는 큰 변화를 맞는다. 언론과 선전가들이 상호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제시한 만주는 일본인과 조선인에게 그들의 관계를 협력적 확장을 펼칠 새로운 미개척지 위에 재구성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 과정에서 정착민 지도자들(언론인, 상인, 기업가, 교육자 등)은 그 모든 사태의 전개에서 중재 역할을 담당했다.
- 일본의 식민통치 기간 중 조선 대중의 기억 속에 내선일체의 전쟁시기보다 더 깊은 자국을 남긴 시기는 없었다. 통합의 이름으로 일본제국은 전례 없는 총력적 규모의 민족공학 프로젝트를 감행했다. 일본 통치자들의 목표는 조선 민족의 구성원들을 '일본인'이라는 지배적인 범주 속으로 모두 흡수함으로써, 새롭게 확장된 '(일본제국의) 가족' 내부에 조선 민족 자체를 제거해버리겠다는 것이었다.
- 많은 정착민은 조선인들이 대거 '일본인'으로 통합되는 것은 식민지 위계질서를 약화시키고 그들의 민족성을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며, 그들의 순수성을 오염시킬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내선일체의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던 많은 정착민들은 전쟁 말기에 가장 무모한 내선일체의 신봉자가 되었다. 내선일체 정책에 따르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보며, 조선인들이 '위장된 친일파, 체념한 친일파, 총구 앞의 친일파'라는 사실을 보지 못했으며, 대다수 조선인들의 굴종이 총력전 체제 아래에서 강요당하는 허구라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
잊혀진 제국의 브로커들
-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일본인 정착민들은 거의 다 본국으로 철수하게 된다. 이미 조선에 깊이 뿌리를 박은 정착민들의 갑작스러운 이들은 그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고바야시 같은 정착민들은 일본의 역사에서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공적 기억에서 모두 사라졌다.
- 정착민 식민주의 유산은 조선반도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새로 건설된 옛 일본인 도시들뿐만 아니라 계속 진행 중인 일본의 기억상실, 논쟁을 부르는 기억의 정치, 그리고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지속적인 차별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무엇보다 그 유산은 일본 고향으로 돌아간 뒤 계속 이질감 속에서 살아가는 조선 거류민 출신들 속에 살아 있다. 귀환자에 따라붙은 사회적 오명, 즉 본국 정부에 대한 그들의 배신감과 짝을 이루는 그것은 희생자 의식과 더불어 정착민 귀한자들 사이의 연대감을 고조시켰다.
*제국은 그들이 돌아간 고향에서도 계속 유령처럼 출몰했다. 로리 와트(Lori Watt)가 보여주었듯이, 그들 모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경제적 미래가 불확실하고 그들을 전혀 환영하지 않는 본국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고향이었다. 귀환자들은 귀중한 식량공급에 대한 성가신 추가 압력요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종종 '조선인으로 오인' 당했다. 그것은 귀환자라는 그들의 식민지 이후의 정체성에 지워지지 않을 '피식민자'라는 낙인을 찍는 최후의 일경이었다. p.541
- 지배자도 피지배자도 아닌 정착민들 자신의 경계인적 체험은 지속적으로 그들 자신의 인생사를 식민지 정치영역과 단절시키는 쪽으로 작동했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제국의 대리인과 희생자 사이를 가르는 가느다란 구획선 양쪽에 계속 양다리를 걸쳤다. 그 결과 일본이 아시아에서 저지른 식민주의 과거사에 대한 자기책임을 모호하게 만들었으며, 그것은 대중적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정착민들의 기이한 부재현상을 낳는데 기여했다.
확장하기(feat. 한국사/세계사 세특)
1. [세계사]
1) '정착민 식민주의' 사례 살펴보기: 조선-일본 / 알제리-프랑스(피에누아: pied-noir)
* (피에누아: pied-noir): (독립 이전의)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
2) 식민지 통치에서 '중개자' 집단에 대한 자료 조사해서 발표하기
2. [한국사]
1)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에서 일본 정착민들의 경제 활동을 분석한 보고서 작성하기
ex) 일본 정착민이 조선의 상권, 농업, 토지 등에 어떻게 진입했는지 구체적 사례 조사
2) 식민 지배와 저항의 경계에 선 일본 정착민들 탐구하기
ex) 조선에 있었던 일본인 중 식민 지배를 비판하거나 조선인과 연대했던 인물 조사

*포스팅에 역사적인 오류나 문제가 있을 시 댓글로 알려주세요.
*개인적인 의견이 담겨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