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리뷰:한국사] 역사용어 바로쓰기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안녕하세요:)
역사 블로그 '토요히스토리' 입니다.
17번째로 인사드리는 역사 도서 리뷰입니다.
오늘 소개할 도서는
「역사비평」2005년 겨울호 특집에서 시작하여
2006년 여름호까지 계속된 '역사용어 바로쓰기' 기획에
실린 글들을 모은 책입니다.
바로!
《역사용어 바로쓰기》입니다.
광복 6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던 2005년에
식민지시대와 해방공간, 분단시대를 거쳐오면서
관용적으로 써온 용어들을 재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대학생 때 읽다가 포기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이 떠오르네요.. ㅎㅎ;;
역사를 가르치면서 종종
역사적 '용어'에 대한 고민이 들 때가 있습니다.
조규는 무엇이고 조약은 무엇인지
위안부인지 성노예인지
정전협정인지 휴전협정인지
해방인지 광복인지
백성과 평민과 민중은 무슨 차이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를 가르칠 때
'개념'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역사적 '용어'를 두고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하니까요!
역사적 용어 및 개념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계기를 준
《역사용어 바로쓰기》
바로 리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서평
역사 용어를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35명의 학자들의 노력이 담긴 책이다. 역사를 가르칠 때 사실 '개념'과 '용어'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역사 용어의 진실과 현실을 둘러싼 논쟁과 그 대안을 모색한 40편의 글을 통해 역사 용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책에서는 우리가 관용적으로 써온 잘못된 용어 혹은 의미가 탈색되었거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는 역사 용어들을 엄선하여, 그 대안은 무엇인지, 꼭 알아야 할 역사 용어 개념은 어떤 것이 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한정숙 교수님이 '들어가는 글'에서 활발한 연구와 논의를 통해 개념사 정리의 표본처럼 된 《역사 기본 개념 사전》과 같은 개념어 사전이 나오기를 고대한다고 밝혔다. 풍부한 용례를 다루되 용어의 뜻만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엄밀한 사학사적 논구에 입각하여 역사 용어의 역사를 돌이켜봄으로써, 단어 하나 속에서 고금의 지성사를 고찰하는 것까지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적 역사 개념어 사전 말이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넘은 지금.. 학계에서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역사 교육과정 뿐만 아니라 역사 용어 및 개념에 대한 가이드 북이 나오기를 고대해 본다. 역사적 용어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무게도 크기 때문이다.
책의 목차보다는 '들어가는 글'에서 글의 성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장. 그동안 통용되어 온 기존의 용어(역사상)를 비판하고 새로운 용어(역사상)를 제안 or 대안 검토를 제안한 경우
김태식(삼국시대에서 사국시대로), 송기호(통일신라시대에서 남북국시대로), 이이화(신사유람단을 1881년 일본시찰단으로), 김민규(조규와 조약, 무엇이 다른가?), 이상찬(을사조약이 아니라 한일외교권위탁조약안이다), 이태진(한국병합조약인가, 한일합방조약인가?), 기광서(서군정은 실재했는가?), 백준기('8월종파':종파, 분파, 당내경쟁), 김동택(외국 국가명 표기를 바꾸자)
2장. 혼용되고 있는 용어들을 소개하고 바람직한 용어를 대안으로 제시한 경우
강정숙('위안부', 정신대, 공창, 성노예), 이기훈(독립운동인가, 민족해방운동인가?), 류시현(무정부주의와 아나키즘), 서중석(중간파인가, 중도파인가, 합작파인가?), 박태균(정전협정인가, 휴전협정인가?), 이신철(월북과 납북), 최정기(근현대 정치범의 다양한 이름), 김희교(극동, 동아시아, 동북아시아의 함의)
3장. 혼용되고 있는 상이한 용어들을 소개하고 이 용어들이 사용되는 담론의 맥락을 비교 분석한 경우
주진오(기존 개화파 용어에 대한 비판), 이윤상(한말, 개항기, 개화기, 애국계몽기), 김정인(왜정시대, 일제식민지시대, 일제강점기), 이기훈(친일과 협력), 신주백(해방인가, 광복인가?), 김희교(중국 애국주의의 실체: 신중화주의, 중화패권주의, 민족주의)
4장. 의미 변천사를 포함하여 기존 용어의 의미를 상술한 경우
정창렬(백성, 평민, 민중), 왕현종(광무개혁을 둘러싼 논쟁), 전우용(민족자본의 개념을 다시 돌아본다), 류시혁(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박찬승(부르주아민족주의, 우파 민족주의, 문화민족주의), 임대식(자유민주주의), 김동택(동포와 민족), 은정태(의사와 열사), 김기원(재벌기업과 재벌총수), 신동원(양력과 음력), 신동원(한의학漢醫學과 한의학韓醫學), 하정일(민족문학, 국민문학, 민족주의문학), 한수영('순수문학'이라는 오해)
5장.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경우
박태균(반탁은 있었지만, 찬탁은 없었다), 박명림(한국전쟁/6.25를 기억하는 방식: 역사용어와 사유체계의 문제), 정병준(탈취-노획의 전쟁기록, NARA의 북한 노획문서 컬렉션), 배성준(간도, 간도출병)
역사 이야기
김민규,「조규와 조약, 무엇이 다른가?」
- 개항기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조규, 조약, 장정 등 많은 용어가 등장한다. 무심코 비슷한 말이라고 하며 넘겨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청일 '수호조규'의 실질적 감독자였던 이홍장이 '조약'이라는 용어를 피하고 '조규'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일본이 서양과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 했기 때문이다. 조선과의 '무역장정' 역시 그러한 의도에서 나왔다. 청국은 적어도 동아시아권 내의 국가인 일본이나 조선은 과거 또는 현재의 조공국으로, 결코 자국과 대등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미 조약을 맺어 대등한 관계에 있는 서구 열강들과 달리 취급하려 했다. 이런 사실은 조약과 조규, 그리고 장정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고 있는 다음의 청국 측 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정하려는 것은 장정인바 조정이 특별히 허락하는 것이다. 조약은 피차가 대등하게 맺는 약장(約章)이지만, 장정이란 상하가 정하는 조규인 것이다. 그 명칭이 다르니 그 실(實) 역시 같지 않다.'
- '조규체제'는 청일전쟁에서 청의 패배로 해체하게 된다. 그에 따라 조공관계 및 조공체제 역시 붕괴되고, 이후 동아시아 3국 사이에도 비로소 조약체제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한국사 수업에서도 임오군란(1882)의 결과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1882)을 다룬다. '장정'의 의미를 보다 의미있게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강정숙,「'위안부', 정신대, 공창, 성노예」
- 저자는 일본군 '위안부' 혹은 일본군 '성노예' 등과 같은 용어를 둘러싼 논쟁이 단순한 언어공방이 아닌 식민 통치·전시 구조·가부장성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일본은 일반 여성을 '위안부'로 동원한다는 소문이 나는 것을 경계하면서, 되도록 성매매에 종사하던 여성들로 '위안부'를 충원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쉽게 관철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국제법을 위반하거나 소위 일반 여성이 동원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본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는데, 하물며 일본군이 전권을 휘두를 수 있는 식민지나 점령지의 여성 동원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 '위안부'가 된 여성들 가운데 '위안부'가 되기 전에 성매매업에 종사하던 여성이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히려 꽤 많은 수가 이 영역에서 공급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위안부'가 된 여성들이 돈을 받았다든지, '위안부'가 된 여성들의 전력(前歷)이 공창이라든지,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운영 방식이 공창제와 유사하다는 데에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안부' 동원과 수송, 위안소 설치, 운영 통제에 일본군과 일본 정부, 그리고 조선총독부가 직접 개입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공창제와 전혀 다르다. 다시 말해서, 일본군 수뇌부가 일본군의 성병 예방, 성욕 해결, 치안 유지 등을 목적으로 제도를 만들고, 일본 정부가 이를 위해 지원하여 일본군 '위안부'라는 피해자들을 만들었다는 데 문제의 초점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외면하고 여성의 전력을 강조하거나 돈을 받았다거나, 혹은 공창제와 유사하다는 등의 특성을 강조하는 것은 '위안부' 제도의 범죄성을 은폐하려 하는 것이다.
- 위안부를 둘러싼 문제와 관련된 책으로, 우에노 지즈코의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을 추천합니다:)
이윤상,「한말, 개항기, 개화기, 애국계몽기」
- 근·현대사의 시대 구분을 할 때,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개항기, 일제강점기, 현대이다. 19C 혼란스러원던 역사적 상황만큼, 이 시기를 나타내는 용어도 다양하다. 저자는 식민지 시기에 사용된 '한말'이라는 용어가 '대한제국 말기'라는 의미보다는 '한국 말기'라는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1897년 대한제국의 수립 이후 '한국'이 우리나라를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므로 일본에 병합되어 나라를 잃은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말기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중국사에서 '명말', '청말' 등 특정 왕조의 말기는 있어도 통칭으로서의 '중국 말기'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 이러한 문제점을 바탕으로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시기를 가리키는 새로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바로 '개항기'와 '개화기' 이다. '개항기'는 시기의 범위에 있어, '개화기'는 개화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번역한 것으로 서구중심적인 시각이 내재해 있다는 점에서 문제점은 있지만,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용어들이다. 정리하자면, '개항기'라는 용어가 개항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개화기'라는 용어는 주로 갑오개혁 이후의 문화·사상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는 점이다.
- 어떤 역사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편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연구자의 이념적 지향과 역사에 대한 평가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 20년이 지났지만, 역사적 용어에 대한 정리가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는지 더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정창렬,「백성, 평민, 민중」
- 민(民)이란 무엇일까? 군주 이외의 모든 사람일 수도 있고, 치자 이외의 모든 피치자일 수도 있고, 막연히 서민 일반일 수도 있다. 쓰는 사람이 어떤 내용을 담아서 쓰는가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저자는 조선 초기에서 1945년까지로 국한하여, 그 시기의 민을 '백성'의 단계, '평민'의 단계, '민중'의 단계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있다.
- 고려시대에 '백성'은 일반 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촌락의 지배자층, 즉 특정 계층을 의미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백성'은 일반 민 내지는 농민 일반을 지칭하는 의미로 변했다. 농업 생산력의 발전과 농민의 역사저 성장 속에서 '민유방본(백성은 곧 나라의 근본)' 이념이 등장한다. 이는 '백성'이 어디까지나 통치행위의 객체적인 대상일 뿐이며, 민=백성에게는 복종의 의무만 일방적으로 부과되어 있고 통치자는 이러한 백성에 대하여 무한한 배려, 즉 인정을 베풂으로써 정치사회의 주체와 객체의 통일적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무로 하고 있었다.
- 조선 후기(18C)에는 이앙법과 견종법, 이모작이 보편화되면서 농업생산력이 크게 발전했다. 신분제의 동요가 일어나면서, 이들은 더이상 민본이념에 매몰되어 있는 단순한 백성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경제적 자립성을 강화하고 가(家)로서의 인간관계를 성립, 안정화시키고 농민적 토지 소유를 실현시키려는 사회경제적 실체에 어울리는 새로운 존재 형태를 추구하는 민(民)이었다고 보이는데, 저자는 이를 '평민(平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평민 문화에서도 그 사회의식은 양반문화·양반사회의 부패와 타락상에 대한 회의와 비판에 그치고 있었고, 스스로를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회의 담당 주체로 의식하는 수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본다.
- 저자는 개항 이후 외래 자본주의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사회적 모순이 더욱 첨예화하고 있던 조건에서, 동학의 포괄적 해방사상을 수용하면서도 그 환상적인 측면을 배제하고 일체의 사회개혁을 농민층 자신의 주체적 실천에 의하여 실현하려는 운동으로 실천된 것이 바로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운동)이라고 말한다. 인간으로서의 해방, 사회 성원으로서의 신분적 해방, 민족으로서의 해방을 유기적으로 통일하여 포괄적으로 해결하려는 사회의식과 사회운동, 즉 한국 민중의식과 한국 민중운동의 원형이 여기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의식과 운동은 1930년대에 새로운 의식과 운동의 형태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식민지하에서의 자본주의적 관계에 확대에 의해 종래의 민중은 이제 계급적 유대로 묶여 계급으로 성립하게 되었다. 노동자 계급은 물론이고, 농민들도 농업을 주체적으로 운영하는 소농민의 성격에서 벗어나, 자본의 논리에 포박된, 지주에 의해 농업노동자적으로 움직이는, 계급적 성격을 농후하게 가지게 되었다. 저자는 그에 따라 이제 계급으로서의 존재에 자기정체성을 가지는 한국 민중이 성립되었다고 해석한다.
류시혁,「사회주의, 공산주의」
- 저자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원론적 이념 구별보다도, 이러한 이론체계를 인간해방과 식민지 상황의 타파를 위한 이론과 조직 원리로 수용하는 데 적극적이었고, 민족운동 차원에서 이를 활용하고자 했다고 한다. 원론적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범주는 다르다. 대략 서구의 사회주의 이론에서는 양자를 소유 방식의 차이로 구별했다. 사회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생산물에 관해 사회주의 사회는 노동의 분량에 비례한 소유(능력에 따른 소유)를 지향하지만, 공산주의 사회는 '필요에 의한 소유'가 가능한 사회로 보았다. 혹은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발전하는 것으로 보았다.
- 위키백과) 현대 공산주의자 사이에서 사회주의는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로 여겨진다. 이러한 관점은 레닌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사회주의로 규정한 이후부터 등장한 관점이다. 레닌의 이러한 규정이 있기 전까지 사회주의는 경제 영역에서 평등과 분배 정의를 실현하는 다양한 사회 운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으며, 공산주의는 경제 영역에서 사유제의 전면적인 철폐를 위해 문화, 사회, 정치등 인류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에 대한 전방위적 변혁을 주장하는 사상으로 여겨졌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전반까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의미가 확립되어 가는 와중에 사회주의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의사를 전제한 협동 경제 형성과 당시 사회에서 나타나는 부조리를 사회 공동체의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 해결하자는 이념으로 그 의미가 굳어졌다. 반면, 공산주의는 기존 사회 체제를 모조리 뒤엎어야 함을 전제했으며, 이후 사회 변혁은 혁명 세력에 의한 강제력에 호소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그 실행 과정에 있어서도 차이점을 보였다. 이러한 성격 차이로 인해 사회주의는 기존의 질서 내에서 종교 명망가 및 선진적인 활동가의 분배 정의를 위한 실천 운동으로 여겨졌지만, 공산주의는 전통의 파괴를 동반하며 기존 사회 체제를 모조리 변혁하는 반국가 및 반그리스도교 운동으로 이해되었다. 즉, 공산주의는 사회주의보다 훨씬 급진적인 운동으로 이해되고 있었으며, 그리스도교 문화가 강렬하게 남아 있던 유럽 사회에서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확장하기(feat. 한국사 세특)
1. '역사 용어' 바로 잡기 탐구 활동
1) 교과서 속의 역사 용어 1~2개를 선정하여,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조사해 보기
2) 일상 속에서 사용되는 잘못된 용어 찾아보고 소개하기
ex) 일상 속 일제강점기 용어의 잔재 찾기
3) 역사 용어와 역사 인식 프레임 분석하기
ex)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 다양한 역사 용어가 붙은 경우를 살펴보고, 그 원인을 분석하기

*포스팅에 역사적인 오류나 문제가 있을 시 댓글로 알려주세요.
*개인적인 의견이 담겨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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