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리뷰:문화재/유산] 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배한철)
안녕하세요:)
역사 블로그 '토요히스토리' 입니다.
18번째로 인사드리는 역사 도서 리뷰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바로
배한철의《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입니다.
저는 국가유산지킴이(구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4년째 이어오고 있는만큼
국가유산에 대한 관심이 정말 많은데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곁들이며
우리나라 국보 47점에 대해 소개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에서는 국가유산마다 지정번호를 달아 놓았는데요!
지정번호가 국가유산을 서열화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2021년에 11월 법 개정으로 사라졌습니다.
아름다운 우리 국보 속 숨겨진 이야기를 알아보는!
《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
바로 리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서평
우리 주변에 국가유산은 늘 존재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국가유산은 그 존재 가치만으로도 뛰어나다. 저자는 역사를 전공하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역사에 대한 애정과 연구를 바탕으로 국보 47점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교과서에서 한번 쯤은 봤을 법한 대한민국 대표 국보이지만, 국보가 제작된 역사적 배경, 의미, 변천사까지 알기는 쉽지 않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와 국보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지금까지 거의 공개된 바 없는 일제강점기 이전의 국보 사진을 다수 수록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저자는 국가유산을 '시간의 예술품'이라고 정의한다. 특히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는 국보는 그 자체의 우수함과 더불어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이 더해져야 진정한 가치를 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같은 경우에는 학생들에게 국가유산을 '역사의 콘텐츠'라고 정의한다. 콘텐츠는 정보, 이야기, 감정, 가치 등을 담아내고 있는 것으로, 국가유산 역시 그 자체가 과거의 삶과 기술, 사상, 사회구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유산 속에 자리잡은 역사적 이야기를 발굴해 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창조는 전통 위에서 이뤄진다. 역사는 생활의 잔해가 아니라 창조의 온상이며 고적은 한낱 술 찌꺼기가 아니라 역사의 상징, 전통의 구현이다." - 우현 고유섭
1부. 국보 발굴 현장 답사기
- 무령왕릉 출토품, 반구대 암각화, 금동대향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고령 금관
2부. 돌아온 국보, 팔려간 국보
- 고려불화, 고려청자, 조선백자, 다보탑
3부.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아
-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해인사 대장경판, 경복궁 근정전, 진흥왕 순수비, 석굴암 석굴
4부. 아직도 풀리지 않은 봉인된 수수께끼
- 신라 금관, 탑평리 7층 석탑, 경주 첨성대, 미륵사지 석탑
5부. 희비애환 인간사를 담다
- 화엄사 석탑, 부석사 무량수전, 불국사(백운·청운교), 금동미륵반가사유상
6부. 위대한 기록을 담은 국보
- 훈민정음 해례본, 삼국사기, 난중일기, 조선왕조실록
7부. 이국의 향기 품은 우리 국보
- 감산사 입상, 경천사지 10층 석탑, 석암리 금제 띠고리, 모전석탑
8부. 국보 제작 비하인드
- 철불좌상,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 혜원 풍속도 화첩, 인왕제색도·금강전도, 성덕대왕신종
역사 이야기
금동대향로
- 백제의 금동대향로를 직접 보았을 때 생각보다 큰 크기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향로에는 아름다우면서도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160여 개 형상이 빈틈없이 조각되어 있다. 연꽃 봉오리를 물고 있는 듯한 용과 날개를 활짝 편 봉황, 신선으로 보이는 각종 인물과 신조, 신수, 호랑이, 사슴, 코끼리, 바위, 폭포, 물가 풍경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서로 다른 생명체가 공존하는 낙원의 모습을 향로에 담아 백제의 영원불멸을 간절히 염원한 것처럼 말이다.
- 삼국시대의 경쟁 속에서 위덕왕은 죽은 성왕의 권위와 위업을 후광으로 삼아 정치적 기반을 재구축하고자 하였고, 그 중심에 선왕(성왕)의 명복을 비는 왕실 원찰(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한 절) 건립이 있었다. 성왕의 무덤은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 있다고 여겨지는데, 사리감 등을 통해 고분군 옆에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향로는 이 사찰의 공방지 나무 물통 속에서 발견되었다. 660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 멸망이 임박해오자 승려들은 이 물통에 향로를 넣었던 것이다. 향로는 물속에서 공기와 접촉 없이 보관된 덕분에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
다보탑
-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다. 지금껏 4번 정도 갔었는데, 볼 때마다 경이롭고 새롭다. 불국사에는 2개의 탑이 있는데, 바로 다보탑과 석가탑이다. 다보여래는 '과거의 부처'를 말한다. 즉, '현재의 부처'인 석가모니를 의미하는 석가탑과 과거의 부처인 다보여래의 다보탑이 나란히 서 있는 불국사는, 신라인들이 지상에 구현한 불교적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 다보탑에는 일제강점기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 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존재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특히 기단의 돌계단 위에 위치한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3마리가 사라져 한 마리만 다보탑을 지키고 있다. 현진건이 1929년 동아일보에 쓴 <고도순례 경주>라는 칼럼에서도 이를 언급하고 있다. 다보탑에는 아직 풀지 못한 비밀이 많다.
"들으매 이 탑의 네 귀에는 돌사자가 있었는데 두 마리는 동경 모 요리점의 손에 들어갔다 하나, 숨기고 내어놓지 않아 진상을 알 길이 없고, 한 마리는 지금 영국 런던에 있는데 다시 찾아오려면 오백만원을 주어야 내어놓겠다고 하다던가."
해인사 대장경판
- 인쇄물이 아닌 목판이 온전한 채로 남은 것은 전 세계적으로 해인사 대장경판이 유일하다.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시 '국가유산을 지킨 사람들'에서도 장경판전에 관한 이야기를 보았었는데, 임진왜란, 일곱 번의 화재,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1251년(고종 38) 완성된 이후 800년이라는 오랜 세월 속에서도 손상 없이 보전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대장경은 모두 세 차례 간행되었다.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제작한 초조대장경, 몽골의 침입으로 불탄 초조대장경 복원을 위해 제작한 재조대장경, 그리고 그 사이에 생산됐다고 전해지는 속장경이 바로 그것이다. 팔만대장경은 1236년부터 1251년까지 15년간 만들어졌다. 6,778권에 8만 1352개 경판으로 이루어졌다. 목판에 새겨진 글자는 5,200만 자로 추산된다. 경판을 모두 연결하면 길이가 60km가 넘는다. 경판에 들어간 나무 수는 1만~1만 5,000그루이며 경판을 새기는 데 동원된 연인원은 130만 명이 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렇게 방대한 경판에서 정교한 글씨체와 오·탈자는 물론 내용상 오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매우 경이로운 일이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에 가면 <사유의 방>이 있다. 넓은 공간에 딱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전시되어 있는데,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충격이 아직도 잊어지지 않는다. 전시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았을 때다녀왔는데, 정말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지정번호가 사라졌지만, 구분을 위해 금동미륵보살가사유상(이하 83호)과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하 78호)이라고 칭하겠다.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83호) 하면 늘 함께 거론되는 불상이 있다. 일본 국보 제1호 고류지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Karl Jaspers)가 "감히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살아 있는 예술미의 극치"라고 극찬했던 불상이다. 두 불상을 보면,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외관이 흡사하다. 두 불상 모두 7세기 초 신라에서 만들어졌고, 이 중 목조반가사유상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본다. 1994년 일본 국보 수리소 다카하시 준부도 "같은 공방에서 한 장인에 의해 제작된 것"이라고 발표해 83호가 고류지 불상의 원형임을 확고히 했다. 그런데 83호가 고류지 불상을 능가하는 가장 객관적인 이유는 금속(청동)으로 주조했다는 것이다.
혜원 풍속도 화첩
- '떠돌면서 살았으며 마치 이방인 같았고, 여항인(중인 문인·예술가)들과 가까웠다." 성호 이익의 손자인 이구환이 엮은 <청구화사>에서 20대의 혜원 신윤복을 이렇게 소개한다. 조선 후기 대표적 풍속화가인 신윤복은 비슷한 시기에 도화서에서 함께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김홍도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영조와 정조의 어진을 그리기도 했고, 중인 신분으로 높은 관직을 얻었던 그는 신윤복과 달리 보수주의적 성품에 보수주의적 화풍을 견지했다. 이와는 달리 신윤복은 양반층 풍류나 남녀 간 연애, 향락적인 생활을 주로 그렸다.
- 이는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성장하면서 유흥과 소비의 문화가 광범위하게 확산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부유한 양반과 중인들은 기방을 중심으로 한 향락 문화를 발전시켰고, 미술품도 종전의 관념적 화풍 대신 자유분방하고 개성 넘치는 풍속화가 발전했다. 풍속도 화첩은 단오풍정, 월하정인, 주유청강, 청금상련, 상춘야흥 등 신윤복의 명작이 총집결된 화첩으로, 일본으로 유출돼 있었던 것을 1934년 간송 전형필이 당시 2만 5,000원이라는 거액으로 구입해 들여왔다.
- 신윤복 이후 사실적인 풍속화는 명맥이 끊기게 된다. 문화계에서 퇴폐를 일소하기 위한 개혁운동이 전개되고 문인화풍이 확산되면서, 풍속을 어지럽힌다는 비판 속에 풍속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아쉬운 일이다.
확장하기(feat. 한국사 세특)
1. '국가유산'을 활용한 역사 탐구 활동 진행하기
1) 책에서 소개된 국보를 선정하여, 역사 탐구 보고서 작성하기
ex) 팔만대장경과 고려의 외교 전략, 사라질 위기에 처한 국가유산: 반구대 암각화
2) 국가유산을 알리고 홍보하는 역사 콘텐츠(숏폼, 카드뉴스 등) 제작하기

*포스팅에 역사적인 오류나 문제가 있을 시 댓글로 알려주세요.
*개인적인 의견이 담겨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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